건청문
건청문(천청문이라고도 함)은 자금성 내정의 정문입니다.
황금빛 사자상 두 개가 양옆을 지키는 건청문은 한때 자금성 내정뿐 아니라 황제의 거처로 들어가는 정문이었습니다. 이 문을 지나면 황제와 왕자, 후궁들이 살던 공간이 있었습니다. 문 너머에는 문 이름의 유래가 된 건청궁이 있습니다. 건청문은 자금성의 남북 중심축에 자리해 궁성을 두 구역으로 나눕니다. 청나라 때 이곳에서 조회가 열렸으며, 황제는 대신들의 보고를 들었습니다.

역사
1420년에 처음 세워졌고 1655년에 재건되었습니다. 청나라(1644~1912)에는 황제가 조회를 열던 장소였습니다. 1644년 청나라 초대 황제 순치제가 건청문에서 국정을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신하들은 아침에 모여 황제를 기다렸고, 황제가 도착하면 임시 어좌를 설치했습니다. 대신들은 재정 부서와 관직, 전쟁 등에 관한 문서와 국정 현안을 황제에게 보고했습니다. 신하들은 무릎을 꿇고 보고했으며, 발언을 마친 뒤 동쪽 계단으로 나갔습니다. 황제는 보고를 들은 뒤 신하가 물러나기 전에 결정을 내려 조서를 내렸습니다.
근면하기로 유명한 강희제(1662~1722)의 재위 이후 황제의 집무 공간으로 성공적으로 기능했던 이 문의 사용은 점차 줄었습니다. 함풍제(1851~1861) 재위 뒤에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자금성의 많은 전각과 문 양옆에는 도금한 청동 사자상이 있지만, 건청문 앞의 사자상은 조금 다릅니다. 대부분 사자상의 귀가 쫑긋 서 있는 반면 이곳 사자상은 귀가 뒤로 접혀 있습니다. 청나라 때 여성이 국정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관념을 반영한 것으로, 접힌 귀는 황후와 후궁에게 정무에 참여하거나 귀 기울이지 말라는 뜻을 전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사자의 접힌 귀는 대신과 고관들이 자금성 내정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건축
건청문은 황실 거처의 정문입니다. 동쪽에는 내좌문과 조정 신하들의 관청이 있고, 서쪽에는 군기처와 내우문이 있습니다. 이 문은 자금성의 내정과 외조를 나누는 축 위에 있을 뿐 아니라 남북 중심축을 따라 궁성을 가운데에서 가르는 위치에 있습니다.
건청문은 높이 1.5m의 대리석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전체 높이는 16m입니다. 문 양쪽에는 사자상 두 개가 있고 문 밖에는 거대한 청동 항아리 네 개가 있습니다. 장식용이면서 실용적인 이 항아리들은 화재를 막기 위해 자금성에 놓였으며, 각각 물을 최대 200갤런 담을 수 있었습니다.
문은 건청문 광장을 향하고 있습니다. 문과 마찬가지로 광장 주변에는 황제가 가족을 만날 때 머물던 집, 여러 정무 대신과 관리들을 위한 대기 공간, 황제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조언하던 군기처 당직실, 고위 관리들의 경비와 호위를 위한 방이 있었습니다.
돌아가기 자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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